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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돋보기] 음반 너머의 지드래곤 USB (김성현 차장, 조선일보)

colorprom 2017. 6. 30. 12:55

[트렌드 돋보기] 음반 너머의 지드래곤 USB


입력 : 2017.06.30 03:14

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의 텅 빈 USB(이동식 저장장치) 때문에 가요계에서 한바탕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의 리더인 지드래곤은 최근 독집 음반을

기존의 콤팩트디스크(CD) 대신에 USB 형태로 발매했다.

수록곡 5곡을 담은 이 신보의 가격은 음반 매장에서 3만원대에 이른다. 기존 CD의 두 배쯤인 고가(高價)다.

문제는 이 USB에 신곡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USB 케이스에 적힌 암호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속한 뒤 음원(音源)과 사진을 일일이 내려받는 방식이다.

USB는 노래가 수록된 '음반'이 아니라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열쇠'에 가까운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가요 차트에서는 지드래곤의 신보를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고 '음원 차트'에만 반영했다.


지드래곤은 "중요한 건 겉포장이 아니라 그 누가 어디서 틀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악,

내 목소리가 녹음된 바로 내 노래"라며 음반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논쟁이 흥미로웠던 건 음반의 운명에 대해서 반추(反芻)할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의 불만과는 달리 현재 가요 시장에서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는 음반 판매량이 아니라

멜론·지니뮤직 같은 8개 음원 차트 순위다.

길거리에서 음반점은 자취를 감췄고, 안방과 거실에서도 CD플레이어는 사라지고 있다.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음반은 디지털 음원에 밀려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가수 지드래곤. /조선일보 DB

돌아보면 1940년대 LP(Long-Playing) 레코드와 1980년대 CD의 등장 덕분에

인류는 훨씬 풍성한 음악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1977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우주 탐사선 보이저 1~2호

바흐의 독주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등을 담은 음반이 실렸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음반은 인류를 상징하는 소리를 담은 '보고(寶庫)'였던 것이다.


클래식 음악만이 아니다.

록 음반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비틀스의 '페퍼 상사의 론리 하츠 클럽 밴드'나

로큰롤을 실험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핑크 플로이드의 '달의 어두운 면' 같은 명반들도

모두 LP 시대의 산물이다.

순전히 음악적 관점에서 보면 지난 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음반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음원이 음반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음악 시장은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가까운 변화를 겪고 있다.

가수들이 10여곡을 정성스럽게 담아서 새 음반을 발표하거나

신곡이 나오면 가요 차트에서 몇 달간 정상을 차지하던 풍경은 과거지 사가 되고 말았다.

최근 음원 차트는 1분 단위로 요동친다.

가수들은 달라진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신곡을 쏟아낸다.


지드래곤의 'USB 논란'은

음반과 음원의 경계가 무너지고, 음반 소장과 음악 감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전환기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나저나 방 하나를 가득 차지한 1만장의 CD는 또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전환기에는 고민도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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