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한국전쟁]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 처음 쓴 미국 여기자와 오산 죽미령 전투 (조선일보)

colorprom 2017. 6. 26. 15:22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 처음 쓴 미국 여기자와 오산 죽미령 전투

입력 : 2017.06.23 16:45 | 수정 : 2017.06.23 17:34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외국인 여기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6·25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이 처음 전투를 벌인 장소는 어디일까.
오산 근처에선 어떤 전투가 벌어졌고, 거기엔 어떤 극한 사연들이 얽혀 있을까.

6·25 전쟁 발발 6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25일 오전 10:40분 KBS 1TV를 통해 방영되는 6·25 특집 다큐멘터리
'운명의 여섯 시간 : 오산 전투, 현장을 가다!'에선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다른 역사의 뒤안길을 조명한다.

▲ 6·25 전쟁 최초의 UN군 참전 ‘오산 죽미령 전투’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은 북한.
유엔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UN군 파병을 결의한다.
우선 일본에 있던 24사단 중 찰스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540을 긴급 편성해
급파한다. 부산에 도착해 오산 죽미령으로 이동한 이 '스미스 부대원'들은
1950년 7월 5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과 혈전을 치른다.

당시 한국에 탱크는 한 대도 없었다.
스미스 부대원들은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과 6시간 동안 싸우다가 180여명이 전사·실종되는 피해를 입는다.

▲ 포로로 잡힌 스미스 부대원의 미공개 영상

오산 전투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제작진은
미국 노스다코타주에서 20여년간 스미스 부대원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 리사 숄 여사를 만난다.
그녀는 스미스 부대원의 월급명세서 등 귀한 자료를 제작진에게 보여준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스미스 부대원의 영상도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이다.
숄 여사가 스미스 부대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오산 죽미령 전쟁에 참여한 스미스부대원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6·25 때 한쪽 손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잃은 아버지는 지금도 1950년 7월의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스미스 부대의 유일한 한국인, 윤승국 예비역 소장

윤승국 예비역 소장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첫 전투였던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있었던 24살의 대위 윤승국은 전쟁이 나자 스미스 부대의 연락장교 임무를 부여받는다. 곧바로 귀국해 전장에 투입된 그는 스미스 부대의 오산 죽미령 전투에 투입돼 생생한 참상들을 목도한다.
목숨을 걸고 북한군의 남진을 막으라는 임무를 맡은 스미스 부대원들의 당시 긴박했던 상황,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죽미령에 군화발을 내딛은 그들의 면면과 숨겨진 진실이 이제서야 밝혀진다.

▲ 6·25 최초의 종군 여기자 매거리트 히긴스

한국 전선 시찰에 나선 맥아더 사령관을 수행 취재하다가 미 지상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소식을 접하고
6·25 한국 전쟁 발발을 전 세계에 최초로 타전했다.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도 그녀였다.
그가 쓴 최초의 한국전쟁 관련 단행본 <WAR OF KOREA>에는
스미스부대 최초의 희생자를 목격했던 순간 등 그녀가 겪은 오산 죽미령전투 목격담이 기록돼 있다.
히긴스의 기록을 통해 전쟁이 패배할 수 없었던 원인과 그 결과를 파헤쳐 본다.

▲ 오산 전투의 교훈과 의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TV유니온(대표:이원혁)의 취재 결과,
오산 죽미령전투에 투입된 스미스 부대원들의 패배 원인은
북한군을 얕잡아 본 극동사령관 맥아더의 오판 때문이었다.

2개 사단만 보내면 손쉽게 진압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지만,
죽미령에서 만난 북한군의 전력은 예기치 않게 강력했다.
1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 당황한 미국은
이후 전쟁 작전을 새로 구상하고 큰 틀을 새로 짜는 계기로 삼았다.

6시간 동안 진행된 패배한 전투였지만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켜 국군과 유엔군 낙동강 교두보를 지켜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준
스미스 부대원들의 숨겨진 희생을 기린다.

오산 죽미령 전투는 유엔군에 이어 소련이 본격 참전하는 계기가 돼 오늘날의 분단 상황까지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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