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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답으로 복귀하자는 건가?-'대지' (서지문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7. 6. 1. 19:18

[서지문의 뉴스로책읽기] 천수답으로 복귀하자는 건가?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 2017.05.30 03:09

[50] 펄 벅 '대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초등학생 때 읽거나 본 뉴스에서
심한 가뭄에 양동이로 샘물을 길어다 논에 붓다가 과로사한 농부의 이야기
또는 밤중에 남의 물길을 잠시 돌려서 자기 논을 적시려다가 주인에게 발각돼
맞아 죽은 농부의 이야기를 접하면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논의 대부분이었던 천수답(天水畓)이
자연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 농민, 우리나라의 처지로 생각되었다.

펄 벅의 장편 '대지'에서 성실, 근면한 주인공 왕룽
속 깊고 알뜰한 아내 오란의 도움을 받아 탄탄한 자작농이 된다.
그러나 안후이성가뭄이 들어 땅이 온통 타들어간다.
왕룽은 어깨에 홈이 파이도록 물을 져 날라 논을 적시지만 가뭄은 해를 넘겨 계속되고
뜯어 먹을 풀도, 벗겨 먹을 나무껍질도 없어져 흙을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른다.
오란은 배 속에서 영양 공급을 못 받아 부실하게 태어난 아이를 목을 눌러서 죽인다.
하늘의 무심함과 인간의 무력함이라니!

4대강 상시 개방을 이틀 앞둔 29일 오후 충남 공주시 공주보 모습.
정부는 다음달 1일 4대강 6개 보
(낙동강-강정고령보, 달성보, 합천창녕보, 창녕함안보, 금강-공주보, 영산강-죽산보)를
상시 개방한다. /신현종 기자

내달 1일부터 공주보(洑)의 수문을 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농민들이 "최근 4~5년간의 가뭄에 금강 물을 끌어다 쓰며 버텼는데 공주보 개방은 농사짓지 말라는 얘기"라며 시름에 겨워한다는 뉴스를 봤다.
올해도 벌써 여러 지방에 심한 가뭄이 들어
저수지 물이 마르고, 작물이 타 죽고, 모내기도 못한 많은 농가가 올 농사를 아예 포기한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4대강 보의 물을 방류하는 것은 농민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농민의 생명과 같은 물을 방류하기 전에 녹조 제거 또는 분해 방법을 최대한 모색하는 것이 순서 아니겠는가.

새 정부는 국민이 정부에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던 몇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언약했다.

새 대통령이 보좌진과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식후 커피를 마시며 격의 없이 담소하는 모습,
자주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약속,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를 대폭 줄이고
대통령 가족의 식비도 사비로 내겠다는 선언 등은 국민에게 감미로운 선물이었다.
그러나 국민을 그렇게 무장해제를 해놓고
국민의 생계와 국가의 존망, 국제적 공조냐 고립이냐를 좌우할 너무도 중요한 조처들을 번개처럼 발표했다.
아무런 국민적 토의나 의견 수렴, 입장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시책이라는 듯이.

채찍으로 국민을 후려치며 재산을 강탈하는 것만이 독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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