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3서

신앙은 가난한 자를 껴안는 것입니다 (요삼 1:1~15) (CBS)

colorprom 2015. 12. 12. 19:55

신앙은 가난한 자를 껴안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요한3서 1:1~1:15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성경 길라잡이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1절): ‘참으로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번역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다.

사랑과 진리의 관계성이 요한이서에 이어 거듭 등장한다.


사랑하는 자여 …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영뿐만 아니라 육체의 건강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자들의 태도와 상반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과 물질(육체)을 분리하고는

영은 선하고 물질(육체)은 악하다고 가르침으로써 육체의 삶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5절):

나그네를 환대하는 신앙을 드러내는 중요한 양식이었다.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신자의 마땅한 태도였으나(8),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의 일행을 맞이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의 일행을 비방하였으며, 나그네를 맞이하려는 이들까지 가로막았다(10).

이런 악행의 동기는 그가 으뜸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디오드레베가 거짓 교사들과 연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즉 거짓 교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도 요한의 일행을 거부한 것일 수 있다.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 교회에서 내쫓는도다(10절):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들 가운데 일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영적인 지도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한 말로 그들을 비방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좋지 못한 본을 보이는 한편 자신의 지도력에 반대하는 자들을 내쫓았다.

이처럼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12절):

데메드리오는 디오드레베와는 달리 사랑과 진리 모두에 관하여 인정받은 사람이다.

 

묵상과 삶

 

나그네는 그 무엇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그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베푸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베풂의 실천을 통해, 이기적인 계산이 아닌 전적인 베풂의 은혜가 구체화됩니다.

 

성경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는 나그네를 환대한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욕망으로 얼룩진 사사시대에 나오미를 품는 룻, 그러한 룻을 품는 보아스의 환대는

새 시대의 전령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환대의 행동이지만, 욕망이 가득한 세상의 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 신비는 욕망의 시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게 합니다.

그 신비의 정점에는 자신을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에는 2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보다 권력이 없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둘째, 부를 추구하는 세상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이를 가난하게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너희들도 우리가 시키는 대로 살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될 것이다!’라고 협박합니다.

 

만일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거부하면 그를 가난하게 만든 세상의 동지가 되는 것이며,

가난한 사람을 껴안으면 그를 가난하게 만든 세상에 함께 맞서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검증하는 하나님의 시금석입니다.

 

삶으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기뻤다고 말합니다. 특히 요한은 가이오가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고 환대하는 것에 대해 크게 칭찬합니다.

그것이 곧 그의 믿음과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크게 꾸짖습니다.

그는 요한을 사도로 인정치 않았고 그래서 요한의 서신을 무시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늘 으뜸 되기를 좋아해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순회 전도자들에 대한 후원은 거부할 뿐만 아니라 후원하려는 자들을 내쫓기까지 했습니다.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듣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삶이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도록 깨어 행동해야만 합니다.

특히 이를 위해 나그네 된 자들을 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그네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나그네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환대할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더욱 견고해져 갈 것입니다.

 

묵상질문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있습니까?

그런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셨습니까? 만일 그런 기억이 없다면 왜 그러할까요?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내 주위에 있는 나그네들은 누구이며, 그들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까요?

 

기도

 

거래하는 욕망이 아니라, 베풀어주는 은혜로 살게 해주십시오.
눈앞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의 삶이 늘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특히 내 주위에 있는 나그네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환대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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