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 / 송봉모신부님 (성서와 인간-10)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 (마태 6:25-34) /송봉모신부
바오로딸/성서와 인간-10 /(124p), 4000원
---걱정하지 마라
p 9 "승자는 과정을 위해서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서 산다.
승자는 달리는 도중에 이미 행복하나, 패자는 경주가 끝나야만 행복이 결정된다."
- 유다 법전
p 49 '오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 오늘의 걱정만큼은 누구나 견딜 수 있다.
=인간은 오늘을 살 뿐이고, 오늘도 한 번에 한순간 씩만 살 뿐이란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사실 오늘의 걱정, 지금 이 순간의 걱정은 결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만약 삶이 힘겹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오늘의 걱정 때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삶이 힘겨운 것은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걱정을 앞당겨 미리 하기 때문이다.
하루 행군을 하면서 평생 행군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준비하려 하기 때문이다.
p 56 정신건강과 영혼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는 것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주전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 속성상 오늘을 살게 하시지만 마귀는 내일을 살도록 이끈다.
마귀는 우리가 늘 내일을 바라보면서 살도록 유혹한다.
내일을 바라보면서 수심에 잠기도록 할 뿐 아니라
'내일 내일'하면서 중요한 오늘 일들을 소흘히 하도록 만든다.
건강한 정신과 영혼을 보존하려면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p 58 우리가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오늘의 하느님, 일상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라는 뜻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어느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다."
주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나는 주님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주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네가 과거를 살아갈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 살아갈 때
너의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었던 자로서 이다(I Was)'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미래를 살아갈 때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으로 살아갈 때
네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을 자로서 이다(I Will Be)'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너의 삶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기 때문이다.
- 말리코트 (Helen Mallicoat) 의 시
p 60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이신 야훼 하느님은 어제와 내일은 모르시는 분이다.
지금 오늘 이 순간만을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일상도(The Way of Everyday Life)의 하느님으로 불린다.
하느님이 일상도의 하느님인 것은 야훼라는 이름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실 때 하루치 만나만을 보내주셨다.
하느님은 오늘만을 사시는 분이시기에 내일치 모레치 만나는 내려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내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나 '우리에게 십년치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오늘의 양식만 주는 일상도의 하느님인 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p 64 1)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라.
생명을 잘 보존하려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 힘들여서 살지 않는다.
중요한 일들은 미루지 말고 때맞추어 하되 중요치 않은 일들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여러분은 우둔한 자들이 아니라 슬기로운 이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자세히 살피시오.
때를 선용하시오" (에베소서 5:15)
2) 선택과 결단의 삶을 살아라. = 정신없이 반응하며 살지 말아라.
반응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던진 공을 잡지 않는 것이다" (리처드 칼슨)
누군가가 던진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일상도를 살아가려면 누군가 던진 공을 생각없이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같이 영혼을 돌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 앞에서도
신중하게 선택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 일에도 충실하다." (누가 16:10)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고린 10:31)
3) 가상적 걱정을 멀리하라.
마귀는 가상적인 비극의 씨앗을 우리 안에 뿌리고는 우리의 평화를 갉아먹는다.
반면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담대한 영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2디모 1:7)
칼슨박사에 의하면 지금 하느님과 함께 온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사 모든 것이 다 사소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데레사 성녀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지나가고 주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시거늘.
p 101 '아메림노스' = 걱정하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하여
*** "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시오." (요한 14:1)
우리가 근심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을 믿는 것이다.
성서적 시각에서는 더이상 확실한 방법이 없다.
*** "수고하고 집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하겠습니다." (마태 11:28)
*** "나는 평화를 여러분에게 남겨두고 갑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또한 겁먹지 않도록 하시오."(요한 14:27)
*** "여러분은 모든 근심을 그분께 내맡기시오."(1베드 5:7)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오직 무슨 일에서나 기도와 간구로써
감사하며 여러분의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알리시오."(빌립보 4:6)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평안이 오기까지 탄원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기까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이것이 아닐까.
p 112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이 주인됨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온전한 의탁을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탁, 이러한 순종의 태도을 없애려는 악마적인 요소가 근심 걱정이다.
근심 걱정은 하느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을 수 없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 필요한 양식을 마련해야 된다는 심중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하느님 대신 재물의 신 마몬을 섬기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마태 6:31)는
정확하게 '세상염려의 삼위일체'를 가리킨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들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38)
바오로딸/성서와 인간-10 /(124p), 4000원
---걱정하지 마라
p 9 "승자는 과정을 위해서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서 산다.
승자는 달리는 도중에 이미 행복하나, 패자는 경주가 끝나야만 행복이 결정된다."
- 유다 법전
p 49 '오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 오늘의 걱정만큼은 누구나 견딜 수 있다.
=인간은 오늘을 살 뿐이고, 오늘도 한 번에 한순간 씩만 살 뿐이란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사실 오늘의 걱정, 지금 이 순간의 걱정은 결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만약 삶이 힘겹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오늘의 걱정 때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삶이 힘겨운 것은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걱정을 앞당겨 미리 하기 때문이다.
하루 행군을 하면서 평생 행군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준비하려 하기 때문이다.
p 56 정신건강과 영혼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는 것이다.
~내일 일을 걱정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주전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 속성상 오늘을 살게 하시지만 마귀는 내일을 살도록 이끈다.
마귀는 우리가 늘 내일을 바라보면서 살도록 유혹한다.
내일을 바라보면서 수심에 잠기도록 할 뿐 아니라
'내일 내일'하면서 중요한 오늘 일들을 소흘히 하도록 만든다.
건강한 정신과 영혼을 보존하려면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p 58 우리가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오늘의 하느님, 일상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라는 뜻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어느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다."
주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나는 주님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주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네가 과거를 살아갈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 살아갈 때
너의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었던 자로서 이다(I Was)'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미래를 살아갈 때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으로 살아갈 때
네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을 자로서 이다(I Will Be)'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너의 삶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기 때문이다.
- 말리코트 (Helen Mallicoat) 의 시
p 60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이신 야훼 하느님은 어제와 내일은 모르시는 분이다.
지금 오늘 이 순간만을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일상도(The Way of Everyday Life)의 하느님으로 불린다.
하느님이 일상도의 하느님인 것은 야훼라는 이름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실 때 하루치 만나만을 보내주셨다.
하느님은 오늘만을 사시는 분이시기에 내일치 모레치 만나는 내려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내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나 '우리에게 십년치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오늘의 양식만 주는 일상도의 하느님인 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p 64 1)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라.
생명을 잘 보존하려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 힘들여서 살지 않는다.
중요한 일들은 미루지 말고 때맞추어 하되 중요치 않은 일들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여러분은 우둔한 자들이 아니라 슬기로운 이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자세히 살피시오.
때를 선용하시오" (에베소서 5:15)
2) 선택과 결단의 삶을 살아라. = 정신없이 반응하며 살지 말아라.
반응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던진 공을 잡지 않는 것이다" (리처드 칼슨)
누군가가 던진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일상도를 살아가려면 누군가 던진 공을 생각없이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같이 영혼을 돌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 앞에서도
신중하게 선택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 일에도 충실하다." (누가 16:10)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고린 10:31)
3) 가상적 걱정을 멀리하라.
마귀는 가상적인 비극의 씨앗을 우리 안에 뿌리고는 우리의 평화를 갉아먹는다.
반면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담대한 영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2디모 1:7)
칼슨박사에 의하면 지금 하느님과 함께 온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사 모든 것이 다 사소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데레사 성녀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지나가고 주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시거늘.
p 101 '아메림노스' = 걱정하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하여
*** "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시오." (요한 14:1)
우리가 근심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을 믿는 것이다.
성서적 시각에서는 더이상 확실한 방법이 없다.
*** "수고하고 집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하겠습니다." (마태 11:28)
*** "나는 평화를 여러분에게 남겨두고 갑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또한 겁먹지 않도록 하시오."(요한 14:27)
*** "여러분은 모든 근심을 그분께 내맡기시오."(1베드 5:7)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오직 무슨 일에서나 기도와 간구로써
감사하며 여러분의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알리시오."(빌립보 4:6)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평안이 오기까지 탄원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기까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이것이 아닐까.
p 112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이 주인됨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온전한 의탁을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탁, 이러한 순종의 태도을 없애려는 악마적인 요소가 근심 걱정이다.
근심 걱정은 하느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을 수 없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 필요한 양식을 마련해야 된다는 심중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하느님 대신 재물의 신 마몬을 섬기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마태 6:31)는
정확하게 '세상염려의 삼위일체'를 가리킨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들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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