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칼럼] <용서를 배우다>(3), 팀 켈러
히브리서 12장 15~16절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살피라"
라는 말씀이 있다. 실감 나는 은유다.
밭모퉁이의 나무를 없애고 싶어서 나무를 베고 밑동까지 파낸다 하자.
이제 됐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얼마 후 밭모퉁이에 가 보면 뜻밖에도 어린 나무가 다시 돋아나 있다.
왜 일까? 땅속에 남아 있던 보이지 않는 뿌리가 싹을 틔운 것이다.
이 말씀은 가해자를 향한 당신의 분노를 시인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늘 이렇게 반응한다.
"아, 저는 괜찮아요. 화난 게 아닙니다. 약간 불쾌한 정도지요."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유지하려고 쓴 뿌리, 즉 악감정을 부인하는 것이다.
"내가 용서는 했지만 잊지는 않으리라."
이 말은 당신이 적극적으로 복수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원한에 차서 상대의 몰락을 바란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피해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기자는 " ...되지 않게 살피라." 예의 주시하라는 뜻의 관용구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보다 원한이 많고,
용서에 인색하며,
다른 사람에게 입은 상처에 쉽게 지배당하는 존재임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숨은 뿌리는 은밀하게 활동한다.
주변까지 넒고 깊게 땅을 파고 들추어내지 않는 한 절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그것이 다시 싹을 틔우면,
어느새 우리는 잔인한 말이나 행동을 해 놓고는 자신도 충격에 빠져 버린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모든 도움에 힘입어 의지적으로 철저히 용서하지 않는 한,
히브리서 말씀처럼 분노가 당신을 "더럽게" 할 것이다.